5월, 싱그러운 계절 속에서 우리는 45년 전 광주의 아픔을 되새긴다. 1980년 5월 18일,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민들을 향한 계엄령이라는 국가 폭력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한강 작가의 2014년 출간된 소설 '소년이 온다'는 그날의 비극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열다섯 살 소년 이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국가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과 남겨진 자들의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존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1. 노벨문학상과 작가 한강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24년,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 수상자로 공식 발표된 그녀는 침묵 속 고통을 문학으로 복원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한강은 말하지 못한 고통을 언어로 구원해낸 작가”라고 밝혔다. 그녀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인 사건일 뿐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국제적으로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 아래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의 참상을 고요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아내며 국내외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2. 작품 내용과 핵심
『소년이 온다』는 단순한 사건 재현을 넘어선다. 열다섯 살 소년 이동호는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시민군을 돕고 시신을 수습하다 끝내 자신의 목숨까지 잃는다. 그의 이야기는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정대, 아들을 잃은 어머니, 그리고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각인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1980년의 광주는 단순한 시위나 집회가 아니었다. 당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려 했다. 광주는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진압과 발포, 체포와 고문이 자행된 공간이었으며, 시민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고, 이들의 죽음은 오랫동안 제대로 기록되거나 진실로 규명되지 못했다.
한강은 바로 그 ‘침묵의 공간’에 문학이라는 언어로 말을 건넨다. 그녀의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감정과 몸의 고통, 죽음 이후의 공허를 시적인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나는 이제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그녀의 수상 소감은 개인적인 예술의 성취를 넘어, 오랫동안 외면되었던 진실과의 화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포기하지 않는 인간 존엄의 불씨를 전한다.
3. 책 속의 주요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있다.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존재하며, 일부는 여전히 그날의 역사를 불편해한다.『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존엄과 기억의 의미, 그리고 ‘잊지 않음’의 윤리적 무게를 묻는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는 우리의 기억을 다시 깨우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경고한다.
한강 작가의 문장은 때로는 건조하게, 때로는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날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적인 연대를 묵묵히 담아낸다. 직접적인 폭력 묘사를 넘어,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그날의 아픔을 더욱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어린 소년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광주의 풍경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혼란, 그리고 희미하게나마 피어나는 희망의 조각들은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위안을 얻고 삶을 이어가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인간이 지닌 숭고한 정신과 연대의 힘을 깨닫게 된다.
✍ 5월, 다시 기억하며
다가오는 5월 18일, 『소년이 온다』를 다시 펼쳐 들며 광주의 이름 없는 이들을 기억해보자. 그들의 희생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고, 지금 우리의 삶에 소중한 의미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선사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말해야 하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 『소년이 온다』는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게 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는 소중한 작품이다.